A wonderful day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나의 여행 이야기

해외 여행/2018 다카마쓰

[2018 다카마쓰여행] 4일차, 노란 호박 빨간 호박

LiiH 2018. 9. 5. 23:16

 

 

 

 

 

 

4일차/2018.05.11


 

 

 

대자연 이틀째.

원래는 고토히라에 가려 했으나 등산은 무리일 것 같아서 섬에 가기로 했다.

 

카가와현에는 많은 섬이 있는데 예술의 섬, 도깨비 섬, 고양이 섬, 올리브 섬 등등 각각 섬마다 테마가 있어서 본인이 가장 끌리는 곳을 골라 가면 좋다.

나는 고양이 섬이라는 아오지마에 가고 싶었으나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고양이도 많지 않고 구경할 거리도 없는 곳 같아서 그나마 한국에서 전시회를 다녀온 적 있는 나오시마에 가기로 했다.

나오시마에는 유명 전시관이 모여 있는 예술의 섬인데, 특히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적 작품인 호박이 있는 곳이다.

 

 

전시회에서 찍은 사진

 

한국에서는 2014년도에 열린 쿠사마 야요이 전시회를 다녀온 적이 있어서 그녀의 작품이 매우 친숙했기에 일본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싶었다.

 

***

 

호텔에서 나오시마행 선착장은 그리 멀지 않았다.

어제 고토덴 역 방향으로 바닷가 끝까지 걸으면 나오시마행 고속선 선착장이라고 아주 친절하게 한글로 쓰여 있다.

 

내가 선착장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반인데 10시 45분 출발이 있어서 얼른 편도로 끊었다.

 

 

아, 나오시마에는 미야노우라항과 혼무라항, 2개의 항구가 있는데 티켓 부스 아주머니께서 어디로 갈래? 묻기에 아무 생각 없이 혼무라항으로 정했다.

 

 

고속선 타러 가는 길.

10분 전부터 승선할 수 있다.

 

배에 탑승 후 출발하길 기다리는데 파도에 배가 출렁출렁, 내 빈속도 울렁울렁했다.

배는 정말 조그맣다. 게다가 승객도 별로 없어서 3인용 의자에 혼자 앉아 창밖을 구경하다가 살짝 졸기도 했다.

나오시마와 데시마 두 군데 들르고, 나오시마까지는 30분이 걸렸다.

 

 

혼무라항 도착!

배에서 내리자마자 그렇게 당황스러울 수가 없었다.

거품을 형상화한 것 같은 자전거 보관소를 빼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마을이 있긴 한데 관광객도 없고 그저 조용할 뿐.

누굴 따라가고 싶어도 배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은 뿔뿔히 흩어져 버렸다.

 

구글맵도 안 먹혀, 안내판도 없어, 바보같이 인포메이션을 찾을 생각도 못 하고 갖고 있는 아주 쓸모 없는 지도 한 장만 들고 노란 호박을 찾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이 지도와 구글맵에 의지한 내 자신 매우 반성해

 

날은 매우 더웠고 찝찔한 바다 냄새가 몸에 들러붙었다.

가끔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거나 우거진 풀숲이 나오면 무서워서 빠른 걸음으로 걸었고, 이정표도 없어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나와는 반대 방향으로 지나가는 자전거들이 있으면 아, 이곳으로 관광객이 지나가는구나,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섬이 작아서 걷는 여행에 좋은 곳이라는 소개에 혹했는데 여자 혼자 섬을 걷기엔 매우 별로이다.

특히나 준비가 안 된 상태라면 말이다.

 

가지 말까 싶어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했으나 꾸역꾸역 직진해 걸어온 끝에 드디어 도착했다.

 

 

도리이

 

 

안녕? 노란 호박아, 4년 만이야.

널 보러 여기까지 45분 동안 걸어왔단다.

 

호박 앞에서 외국인이 캠을 찍길래 기다려 주고 나도 한 컷 찰칵.

이 호박을 보니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고생했던 지난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호박을 바라보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베넷세하우스 뮤지엄에도 들르지? 하는 생각을 하겠지만, 노노.

몇 번의 해외 여행으로 내겐 현대 미술에 관심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아주 잘 알기에 고민 없이 되돌아갔다.

 

익숙해진 길을 따라 혼무라항까지는 30분이 걸렸다.

다시 자전거 보관소로 와서 마을을 둘러보았으나 음, 별로 끌리지 않았다.

 

그래서 또다시 거지 같은 지도와 제멋대로인 구글맵에 의지해 마야노우라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다행히 마을에 미야노우라항 안내판이 있다. 하지만 이뿐이다.

 

공중 화장실이 있어서 잠시 들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다르게 자전거를 타는 관광객이나 차가 있어서 그들을 따라가니 나름 갈 만했다.

시골길이라 뷰도 그냥 저냥. 그저 날이 더워죽는 줄 알았다.

물이 없었으면 진즉에 쓰러졌을 뻔.

 

미야노우라항에 도착하자마자 돌아가는 티켓을 끊으려 했으나 쾌속선은 4시 15분에 있길래─내가 도착한 시간은 1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다─그냥 2시 20분에 있는 50분 걸리는 페리를 끊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항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빠빠빨간 호박.

노란 호박에 비해 감흥은 적었지만 혼자서 두 호박을 보기 위해 섬을 걸었다는 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I♥湯아이 러브 유

 

이 동네의 공중 목욕탕이자 일본 아티스트의 작품인데, 취향이 아니라 그런지 상당히 조잡해 보였다. 내부도 멋있다고 하던데 입장할 수 없어 쿨하게 뒤돌아섰다.

가고 싶은 카페에도 갔으나 자전거 대여만 가능하고 영업을 안 한다고 해서 쓸쓸히 대합실로 돌아왔다.

 

2시 10분에 페리에 탑승을 시작했다.

 

 

좌석은 아무 곳에 앉을 수 있어서 가운데 맨 끝에 자리를 잡았다.

대부분의 승객은 바다를 보기 위해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나는 멀미가 무서웠다.

페리 냄새, 새 페인트 냄새에 취해 느릿느릿 다카마쓰로 향했다.

 

다카마쓰에 도착해서는 바로 호텔로 걸어가 지친 몸을 위해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와 숙소에서 1분 거리에 있는 히가사에 갔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올리브 히레를 주문했다.

손님은 나를 제외한 2명, 요리하는 아저씨도 한 명뿐이다.

조용하게 식사하겠거니 싶었는데 어느 순간 한 명씩 퐁당퐁당 자리를 잡더니 내 옆으로 한국인 모녀가 자리를 잡았다.

둘이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찌나 부럽던지...

그래서였나. 다음엔 엄마랑 여행을 간 게 그 이유였을지도.

 

따끈하게 나온 돈카츠는 촉촉하니 맛있었다.

올리브를 먹인 돼지라서... 가 아니라 아저씨가 질기지 않게 잘 튀긴 듯.

너무 배고프고 힘들어서 사진은 안 찍었지만 근래에 먹은 돈가스 중 가장 맛있게 먹었다.

 

 

일일 지출 내역

물 ¥108

나오시마행 쾌속선 ¥1,220

다카마쓰행 일반 페리 ¥520

편의점 ¥1,403

돈카츠 히가사 ¥2,300

 

* 본문의 지도는 소장하고 있는 것을 스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