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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2022 제주도

[2022 제주도여행] 3일 차, 조금 흐려도 괜찮아

LiiH 2025. 1. 5. 21:54


3일 차 / 2022.11.12

분명 맥주 마시고 잠들어서 꿀잠을 잤어야 했는데...

꿀잠은 무슨.

새벽에 너무너무너무너무 더워서 잠에 깨길 여러 번.

땀을 삐질삐질 흘려 머리가 젖었고, 온천욕하고 맥주를 마셔서─그럴 일 없지만─술병 난 건가 생각할 정도로 온몸이 푹 절었다.

 

그때가 새벽 5시.

엄마가 춥다고 실내 온돌 온도를 26도로 맞춘 게 화근이었지만, 새벽녘 우리는 그 사실을 잊은 채 끙끙 앓으며 땀에 절어 있다가 급하게 에어컨을 틀었다.

그리고 다시 잠듬.

다시 일어났을 때 테라스에서 바라본 산방산은 안개에 잠겨 있었다.

 

일어난 시간은 8시 50분, 아침은 9시 30분 마감.

대충 준비한 뒤, 우리는 얼른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단체 손님을 받는 곳답게 크고 넓었다.

단지... 그 넓은 곳에 엄마와 나, 그리고 부모+아이로 구성된 한 가족이 있었을 뿐.

참치죽, 소고기배춧국, 계란 후라이, 조미김, 야쿠르트, 흰밥, 소세지, 소불고기, 나물, 미니 돈가스

 

맛은 패키지 여행할 때 단체로 묵는 숙소의 단체 급식 같은 맛?

입맛 무딘 나에겐 평범한 급식 같은 맛이어서─학창 시절에도 급식에 불만 가진 적 없다─전체적인 숙소 가격을 생각하면 괜찮았다.

게다가 계란 후라이는 직접 후라이팬에 조리할 수 있어서 그건 좋았음.

 

아침 먹고, 짐 정리 하고, 체크아웃했다.

날은 여전히 흐렸고, 비도 조금씩 내렸지만 비가 온다고 여행을 안 할 수 없는 법.

흐리면 흐린 대로 그 분위기를 즐기면 되기에 일정 변경 없이 첫 일정으로 짜둔 세계 자동차&피아노 박물관으로 향했다.

아까보다 더 많이 비가 내렸지만 주차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차들이 있었다.

실내이기도 하고, 다들 비 내린다고 구경 안 하는 거 아니니까.

 

매표소로 가 입장권을 끊는데, 직원분이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얼결에 받아보니 당... 근...?

박물관 안에 사슴이 있다며 먹이로 당근을 주심.   

당근을 꼬옥 쥐고 올라가 본다.

넒은 공원에 자동차가 전시되어 있고

사슴도 있다.

정말 사슴이 있다.

왜? 자동차 박물관에 사슴이...?

이 녀석들, 당근 들고 있는 사람은 귀신같이 잘 알아서 슬금슬금 다가온다.

내가 먹을 것도 아니기에 가지고 있던 당근은 모조리 다 주었다.

예뻐서 한 컷

공원을 쭉 둘러보고 본격적으로 구경하기 위해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있는 비싼 벤츠

모델명은 모르겠다.

 

사실 나는 장롱 면허에 자동차에는 1도 관심이 없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엄마가 그나마 관심 있는 자동차, 그리고 내가 그나마 관심 있는 피아노가 전시된 박물관이기에 넣어둔 코스였다.

 

재밌지는 않지만 시대별 자동차를 구경할 수 있어 눈이 즐거웠고 평소에 보지 못할 자동차가 많아 제주도에 온다면 한번쯤은 볼 만한 곳인 것 같다.  

피아노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유럽풍 천장이 살짝 보인다.

 

규모는 자동차 박물관보다 작지만 이곳도 평소에 보지 못할 피아노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자동차&피아노 박물관을 빠져나와 중문 관광 안내소로 향했다.

코스를 짜오긴 했지만 그래도 지도는 필요할 것 같아서 관광 지도 한 장 얻으러 향했는데...

마침 점심시간에 딱 걸려 버렸다.

직원들 모두 자리를 비운 상황.

안내소에 있는 하르방 사진만 찍고 다시 차에 올랐다.

이건 관광 안내소 주변에 있는 카트 체험장 구조물인데 너무 괴상해서 찍어보았다.

 

그다음으로 향한 곳은 너무너무 유명한 주상절리대.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온 적 있는데, 기억이 아무것도 나지 않음에도 딱 2가지, 주상절리와 맛없던 흑돼지 두루치기는 잊히질 않는다.

약 20년의 세월이 흘러서 그런가.

그때보다 더 풍화된 듯한 주상절리대.

하지만 여전히 선명하고 멋있다.

 

비바람 불어 철썩철썩 파도 치는 풍경을 눈에 담아본다. 

짧은 구경을 마치고 잠시 휴식도 취할 겸, 이 근방에서 제일 유명한 VADADA 카페로 향했다.

여전히 비는 내리지만 카페에는 날씨와 상관없이 북적북적했다.

인기 있는 곳답게 야외는 만석이었고 실내도 자리가 없어 다른 사람이 자리를 비워줄 때까지 기다렸다가 착석.

엄마가 시킨 아메리카노와 내가 시킨 제주 녹차티, 그리고 쿠키(?)

뜨거운 물에 녹차 티백 우린 차 한 잔이 9,000원이라 비쌌지만 제주도 관광단지에, 바닷가 바로 앞이니 자릿세라 생각하고 마셨다.

물론 이날 날씨가 좋지 않아 뷰는 그냥저냥.

 

그래도 우리가 앉아 있던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사람이 오갔고, 자리는 계속 만석이었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 와중에도 야외에 앉겠다며 의자를 펼친 중년 무리도 있을 정도.

 

커피&차 한 잔으로 따뜻하게 몸을 데운 우리는 그다음으로 약천사로 향했다.

 

다른 구경할 곳이 정말 많았지만 우선 제주도에 여러 번 와본 엄마가 가보지 않았던 곳을 찾느라 이곳을 선택하게 되었고,

또 내가 찾아본 제주도 사찰 중 규모도 크고 구경하기에 괜찮은 곳 같아서 선택하게 되었다.

주차하고 경내로 향하는 길

한데 절이 3층짜리다.

너무 신식 건물 아닌가요...?

 

게다가 이 건물은 보통의 대웅전이 아닌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대적광전이라고...

생소한 이름에 잠시 거리를 두었지만 오히려 색다른 것이 더 좋아!

게다가 코끼리 불상이 곳곳에 있어 한층 더 마음에 들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서양 예술은 성경을, 동양(불교) 예술은 불화, 탱화를 알아두면 참 좋다.

첫 번째는 보리수 나무 밑 부처님 같은데 두 번째는 모르겠단 말이지.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비로자나불

 

마침 우리가 방문한 날은 어린이 합창 대회가 열린 날이어서 절 내부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특히 1층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어서 간단하게 눈으로만 구경하고, 2층과 3층으로 올라가 조용히 내부를 관람했다.

외부로 나와 굴법당에도 가보고

다만 스님이 안에 계셔 사진은 패스

불사리탑으로 향하는 길

노오랗고 예쁜 귤이 매달려 있다

즐길거리 많은 제주도에서 사찰 방문은 다소 의아할 수 있겠지만

귤과 야자수가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은 약천사가 유일할 듯싶다.

게다가 아기자기한 코끼리들까지 잔뜩 있어 평소 사찰 좋아하는 사람에게 적극 추천.

 

그다음으로는 동해 촛대바위처럼 바다에 우뚝 솟아있는 돌 기둥 외돌개로 향했다.

주차를 잘못했는지 주차장에서 외돌개까지의 거리가 상당하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땀이 삐질삐질.

해안가를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드디어 목적지에 다 와간다.

탁 트인 풍경 구경 한번 하고

외돌개와 드디어 만남.

마지 골인 지점에 도착한 느낌이랄까.

 

오늘의 일정도 어느새 마지막을 향해간다.

오후 느즈막이 들른 곳은 우리나라 화가 중 한 사람인 이중섭을 기리는 이중섭 미술관이다.

미술 교과서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황소>와 <천도 복숭아>로 유명한 그는 피란 당시 네 식구가 함께 머물렀던 제주도에서의 기억이 가장 행복했다고.

그래서 제주도에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있다.

제주에 머물 당시 그가 살았던 곳도 둘러보고

미술관도 둘러봤다.

대표작 황소

 

미술관은 작고 아담했다.

하지만 짧게 둘러보기엔 더없이 좋았다.

옥상에는 섶섬을 그린 작품이 있는데

저 멀리 이중섭의 그림과 똑같은 모습으로 우뚝 서 있는 섶섬이 보였다.

미술관을 빠져나와 이중섭 거리로 나와본다.

하르방과 아이들

제일 맘에 들었던 그림

내가 찍은 사진들 외에도 이중섭 거리 곳곳엔 그의 작품이 잔뜩 있어서 그것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이중섭 거리 구경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그의 동상.

이중섭 동상을 끝으로 우리는 다음 코스로 넘어갔다.

 

일몰을 보기 위해 찾은 새섬. 

 

아슬아슬하게 시간 맞춰 도착하였으나 궃은 날씨로 인해 일몰은 잘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주차장에 도착할 때쯤 비가 엄청 내리기 시작했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뚫으며 도착한 오늘의 마지막 코스, 천지연 폭포.

사실 원래 코스가 아니었지만 야간 개장 한다고 해서, 또 새섬과 가까워서 급하게 끼워넣었다.

이미 해는 져 어두컴컴했지만 가는 길이 잘 꾸며져 있어 구경할 만했다.

한 커플이 과자를 버리는 수준으로 오리한테 밥을 주는 광경을 목격.

천지연 폭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를 붙인 귀여운 하르방들

길가에 놓인 이 레이저에서 나온 빛이

반짝반짝 빛을 그리고 있었다

드디어 도착한 천지연 폭포.

잠시 비가 멈춘 틈을 타 사람들이 찰칵찰칵 폭포를 배경으로 독사진을 찍었다.

그중 친구 사이인 듯한 여자 둘이 전세를 낸 것처럼 수 분 동안 폭포 앞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 뒤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도 비켜줄 생각을 안 했다.

그러다 엄마와 내 차례가 되어 짧이 사진을 찍고 돌아나오는 순간,

순식간에 퍼붓는 비, 비, 그리고 비.

 

신발도 젖고, 내 등도 젖고,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었다.

사실 새섬에서부터 너무 힘들었는데 엄마가 이왕 온 김에 많이 보자 하여─엄마는 이미 다녀온 곳들이다─들렀던 것이라 몸도 마음도 지칠 때쯤...

그래도 저녁은 먹자 하여 제주 갈치 조림으로 유명한 식당을 찾았다.

살짝 웨이팅이 있었지만 바로 들어갔다.

갈치 조림 중자

뜨끈한 밥 한 숟갈에 뽀얀 갈치살 발라 무 조림과 얹어서 한꺼번에 와앙

 

고소한 고등어 구이도 맛있었지만 역시 메인인 갈치 조림이 엄청 부드럽고 맛있었다.

특히 무에 간이 잘 배어서 무만 먹어도 밥 한 공기 다 비울 수 있을 정도.

그 외 밑반찬에는 손이 안 갔지만 메인만큼은 정말 맛집 인정.

근데 원래 그런 건지 어쩐지 몰라도 우리가 시킨 갈치 조림은 전부 내장 부위였다.

 

여자 둘이서 갈치 조림 중자를 싹싹 다 비운 뒤 만족스러운 배를 두드리며 이번 제주 여행의 마지막 숙소, KAL호텔로 향했다.

1층 로비에서 체크인

정말 별 생각 없이 왔는데 이날 운좋게도 룸 업그레이드를 받았다!

와! 미친. 이런 적 처음이야.

룸 업그레이드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트윈룸을 예약했는데 싱글룸 2개와 화장실 하나로 구성된 스위트룸을 받았다.

 

엄마와 나는 지친 몸을 씻어내고 야식으로 컵라면을 먹은 뒤 각자의 방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다.